학원은 시끄럽지만 선생님의 차를 타고 우리집으로 가는 길은 조용해서 행복하다. 아니, 사실은 선생님과 같이 얘기를 나누기 때문에 그닥 조용하진 않지만, 선생님과 단 둘이 같이 있는 이 시간이 좋다. 예전에 친구놈이 보조석은 여자친구나 아내만 앉을 수 있는곳이라고 핀잔을 줘서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을 그 놈 얼굴에다가 던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까지만 해도 친구랑 나, 선생님, 이렇게 셋이서 함께 했던 귀가길이었지만 친구가 학원을 그만 둔 지금은 귀가길이 선생님과 나, 단 둘 뿐이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보조석에 앉고 선생님은 항상 내 옆에 있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이걸로 만족해야만 하는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랬기에 나는 손에 들고 있는 mp3를 더 꼭 쥐며 시선을 창 밖으로 돌리었다. 스쳐지나가는 가로등과 가로수, 늦은 밤이라 사람이 다니지 않는 거리. 만약 이 세상에 선생님과 나, 단 둘만이 남겨진다면, 지금 이런 기분일까?


"아,맞아. 현호야."


이름 불려졌다.
붉은 신호에 차가 멈춰서자 변함없는 창 밖 풍경에 싫증을 느끼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선생님을 바라보자 동시에 선생님고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제발 그런 웃음 좀 짓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은데, 나는 겁쟁이라서 별 수 없이 붉어지는 얼굴이 들킬까봐 다급히 고개를 다시 창 밖으로 돌리었다.


"왜요?"
"너 이제 그 자리 못앉을 수도 있어."


잠깐동안 모든 행동을 멈추고 생각해봤다. 이 자리에 못앉을 수도 있다는 건, 한가지 밖에 답이 나오지 않았다.


"...여자친구 생기셨어요..?"
"아니. 그건 아닌데, 이번주에 선 봐."


-부모님이 손주 보고싶다고 결혼 좀 하라고 자꾸 보채서.
파란불이 켜졌다. 선생님은 그저 행복한 듯이 웃으며 운전대를 잡고 계속해서 밤의 거리를 나아갔다.
그래,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선생님은 어른이고, 나는 어린아이인데다가 나이차이도 많이나고 둘 다 남자인 이상 사회의 좋은 시선은 받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부모님께서 원하시는 손주를, 나는 낳아드릴 수 없다.
내가 만약 여자였다면, 선생님을 지금 이 곳에서 붙잡을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선생님은 나를 선택해줬을까?
사실 선생님이 이성애자라는 것은 알고 있다. 선생님께서 내게 비밀스러운 얘기나 가족얘기, 옛날 얘기를 들려주는 이유도 내가 좋아서가 아니라 단지 나를 편하게 생각해서 말해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것도 단 둘이 남겨진 이런 공간에선 더더욱.


"요즘 세상 흉흉하니까 누가 사탕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말고. 알았지?"


차가 골목길 앞에서 멈추어섰다. 매고 있던 안전벨트를 풀려는데 별안간 선생님께서 그리 말씀하시며 내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그 때문인지 금방이라도 눈에서 눈물이 넘쳐 흐를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서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이 차에서 내려 골목길 안쪽으로 뛰었다. 가방안에서는 책과 필통, 안경이 들썩이며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었고, 그 소리는 마치 고장난 내 마음 같았다.
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숨을 몰아쉬며 집 대문 옆 가로등 아래에 도착했을 때, 나는 그제서야 그 자리에 주저앉아 소리를 삼켜가며 눈물을 터뜨렸다.
처음부터 가질 수 없는 상대였다. 학원강사와 학생, 그외에는 절대 따로 접촉할일이 없는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쩌면' 이라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전해질지도 몰라. 어쩌면 닿을지도 몰라.
이미 하늘로 가는 동아줄은 모두 썩어 끊어져버린 채였는데도 그런 헛된 희망을 품고 있었던 나를 신께서는 얼마나 비웃었을까.
차라리 선생님을 사랑하게 괴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폭풍이 치던 밤에 단 둘만이 있었던 교실에서 담요로 나를 감싸고 끌어안아 토닥여주었던 그 시간을,
지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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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치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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