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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오이] 사춘기.

참치초밥 2015. 5. 2. 21:35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함께 한 시간은 열손가락 안에 꼽을 수 없다. 태어날 때 부터 서로가 서로의 옆에 있었기에, 서로가 없던 삶은 상상 할 수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이였을까. 맨 처음엔 단순한 친구였던 관계가 미묘하게 바뀌어, 결국 둘은 올곧은 길에서 길을 잘못 들리고 말았다.

매일 밤마다 서로를 끌어안으며 뜨거운 숨결을 토해내고, 사랑을 속삭이던 시간들은 둘의 사이를 더욱 끈끈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5년이 지났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 시작되었던 사랑은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둘의 관계에선 아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뒤늦은 '사춘기' 라는 것으로 인해 오이카와에게 문제가 생겨버렸다. 그건 바로 눈물이 많아졌다는 것과 헤어지자는 말을 자주 내뱉는 것이였다. 그리고 어제만 해도 그랬다. 이와이즈미가 단 여자랑 과제때문에 얘기하고 있던걸 보고 혼자 괜한 오해를 해 그 날 하루종일 이와이즈미가 그를 찾아야 하는 수고를 당해야 했다.

그는 음악실의 구석에 숨어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같이 해오던 유일한게 악기였기에 음악실은 둘에게 소중한 장소였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그 사실을 기억해 낼 만큼 꼼꼼한 타입이 아니라서 교내를 다 돌고 나서야 마지막으로 음악실로 들어왔고, 피아노 의자뒤에 앉아있는 그를 보곤 허탈감의 웃음을 흘렸다.




"야."
"... ..."
"대답해, 오이카와."




맨처음 두,세 번은 그래 그럴수도 있어 하고 넘겼던 그도 이젠 진저리가 날 만큼 지쳐있었다. 그랬기에 말이 좋게 나가지 않는것은 당연한 것이였다. 이와이즈미의 투박한 말투가 음악실 안에서 짧게 울려퍼졌다. 몇 분 동안의 침묵. 그 끝에 이와이즈미가 입을 떼려는 순간 오이카와가 입을 뗐다.




"요즘 이와쨩이 내게 친절하지 않아."




대체 얼마나 운건지 낮게 잠겨있는 그의 목소리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한숨을 쉬며 다가가려는 순간 오이카와가 다급하게 외쳤다.

오지마!

그의 외침과 함께 이와이즈미의 발걸음이 멈춰졌고, 오이카와는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그의 숨을 짧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소리가 크게 들려서 이와이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울지마. 나 우는거 싫어해."




이와이즈미의 말에도 그는 울음을 그칠 기세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다시 뭐라 하려다가 이내 말을 삼키곤 옆에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곤 한숨을 쉬었다.

헤어질까,우리?

이와이즈미의 말에 오이카와가 놀란 표정을 지은채로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힘이 풀린건지 옆으로 꼬구라져 책상모서리에 허리를 세게 부딪혔다.

고통의 크기를 알려주 듯 소리는 크게 울려퍼졌고, 그가 요란스럽게 바닥에 엎어졌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그런 그를 보며 일어나지 않고 자리에 앉아있었다. 평소같았으면 자신에게 다가와 괜찮냐고 물어봤을 이와이즈미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이와쨩...이와쨩....

그가 자신의 허리를 감싸쥐며 울분을 토해내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그를 괴롭히고 있는것일까. 이와이즈미는 한순간 그에게 동요될 뻔 했지만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손 뻗어주면 오이카와는 혼자서 일어설 수 없다. 그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며 일부로 도와주지 않는 것이였다. 그러니 어찌보면 헤어지자는 말도 거짓이라는 것이였다. 하지만 뒤이어 나온 오이카와의 말에 이와이즈미가 되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래..헤어지자."











"오이카와,짐 다 챙겼니?!!"



이른 아침부터 오이카와의 집이 시끄러웠다. 오이카와는 꽤나 묵직한 가방을 짊어맨채로 깨끗한 자신의 방을 둘러보다가 엄마의 부름에 대답했다. 응! 다 했어! 그의 대답을 들은 그의 엄마는 아래로 내려오라며 그를 재촉했고, 그는 잠시만! 이라며 겉옷 주머니에서 조그만 도자기 인형을 꺼내 창가위에 올려놓았다. 축제 때 이와이즈미가 그에게 사준 것 이였다.




"난 이제 떠나,이와쨩. 그러니까 이제 이 집은 너가 지켜줘야 해."




잘있어 이와쨩.

도자기 인형-일명 이와쨩-에게 인사를 마친 그가 이내 황급히 아래로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가자 짐을 싸들고 있는 그의 부모님이 보였고, 그들은 뭘 그렇게 늦게 나오나며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오이카와는 그 핀잔에 어색하게 웃고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활기차게 말했다.

출발합시다!

어느 누가 알까. 사춘기라고 생각했던 그의 작별준비를. 아마도 집안에 남겨진 도자기 인형만이 알 것이다. 그가 마지막으로 집을 훑어보았다.

아아, 저곳에서 같이 나고 자랐는데.

그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피어올랐고, 얼마 안 있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그 행동을 그만 두고 황급히 집을 빠져나왔다. 다 챙겼지? 확인하는 듯 묻는 아빠를 향해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열면 눈물이 터질것만 같은 기분이였다.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잠기고 열쇠가 그의 손에 들어왔다. 잘 가지고 있어. 아빠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 열쇠를 넣었다. 그리고서 미리 빼놓은 차에 짐을 실었다. 그리고 차문을 열고 그가 탈려 할 때, 누군가가 자신의 뒷덜미를 잡아 당겼다.





"에?에?!"




깜짝놀란 그가 황급히 뒤를 쳐다보자 뛰어왔는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는 이와이즈미가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잔뜩 화가 난 표정을 지은채로 오이카와를 보더니 한마디를 내뱉었다.

이럴려고 나한테 헤어지자 한거냐!





"에! 이와쨩! 엄마아빠 있는데..!"
"떠나는데 헤어지긴 왜 헤어져! 평생 떨어지는것도 아닌데! 너가 죽을 사람이야?! 어?!"




오이카와,헤어지다니. 무슨??

이와이즈미가 언급한 헤어지다라는 단어를 들은 오이카와의 엄마가 고개를 돌려 둘을 쳐다보았다. 덕분에 오이카와는 이와쨩이랑 조금만 얘기좀 하고 올게요! 라며 집안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빨리 오렴 이라는 말을 남겨두었다.

오이카와가 거의 끌다시피 이와이즈미를 집안에 들였고, 황급히 문을 닫았다. 아아, 위험해 위험해. 하마터면 들킬뻔 했어.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뱉자 이와이즈미는 팔짱을 낀채로 그를 쳐다보더니 곧 그의 손목을 움켜쥐고 그의 방으로 끌도 갔다.

이와쨩! 아파!!

아프다는 그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이와이즈미가 그를 방안으로 내동댕이 쳤고, 곧 창가에서 도자기 인형을 가져와 오이카와의 눈앞에 내밀었다.





"너 진짜 바보야?"




왜 다 버리려고 해? 이사가는게 대수야?

도자기 인형을 바라보던 오이카와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절대 말을 하지 않을 생각인지 고개를 숙였고, 결국엔 이와이즈미가 그의 턱을 들어올려 입을 맞추었다.

한참을 서로의 혀를 섞고 옭아메고서야 입을 떼 오이카와를 본 이와이즈미는 눈을 크게 떴다. 오이카와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황급히 두손으로 그의 뺨을 그러쥐자 따뜻한 온도가 전해졌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오이카와..."
"이와쨩은 끝까지 바보네."



내가 이렇게 까지 이와쨩을 보내 이유가 뭐겠어?

눈물을 닦아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어느 다른 곳에 누군가와, 나 같은 남자말고 예쁘고 참한 아내를 만나서 2세를 낳고 오순도순 살라고 내가 쪽팔리게 이런짓까지 했건만. 이와쨩,눈치없어. 진짜 최악."





그가 애써 웃었다. 하지만 눈물과 웃음의 조합은 어울리지 않아서 그를 더 괴로워 보이게 했다. 이와이즈미가 그를 끌어안았다.





"너도 최악이야 바보카와."
"엑, 그 별명 오랜만이려나."
"어디 다른데서 누군가와라니. 그런게 가능할리가 없잖아."





내가 좋아하는 건 너야.

이와이즈미의 말이 오이카와의 심장을 건드렸다. 덕분에 그는 몸을 흠칫했고, 곧 이어서 손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그가 시선을 내려 손바닥을 보자 그건 도자기 인형인 이와쨩이였다.




"가져가."




가져가서 거기서도 평생 내 생각해. 내가 방학마다 놀러가 줄테니까, 나 말고 다른놈 만날 생각도 하지 말고.

애써 멈추었던 오이카와의 눈에서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다. 이와이즈미는 그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닦아주었고, 한참후에서야 진정이 된 그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문을 열쇠로 잠구고 오이카와가 열쇠를 이와이즈미에게 내밀었다. 다시 돌아오는 날까지 너가 이곳을 지켜줘.




"도자기 인형 대신이니까,이와쨩!"



오랜만에 보는 밝은 모습에 이와이즈미도 좋은지 활짝 웃었다. 기다릴게! 이와이즈미의 대답을 끝으로 오이카와는 차에 올라탔고 그가 타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오이카와는 창문사이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내년 여름방학 때 봐 이와쨩!!

그를 태운 차는 얼마안가 멀리 사라져버려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서야 이와이즈미는 그곳에서 발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렇게 오이카와는 떠났고, 이와이즈미는 이곳에 혼자 남겨졌지만 서로의 마음만은 따뜻했다.

내년에 만나자.

오이카와가 사라지고 이와이즈미도 사라진 거리엔 둘의 앞길을 기원하듯 하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안가 눈은 쌓이고 쌓여갔고, 각기 다른 곳에서 그 눈을 보고 있던 둘은 핸드폰으로 서로에게 문자를 보내었다.




'올해 첫 눈을 너에게 바칠게.'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