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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산고등학교 2학년 투견반 3.

참치초밥 2016. 2. 1. 10:59

벌써 가을이다. 초록색이던 잎들은 모두 노랑색과 주황색으로 물들어버렸고, 쌀쌀한 바람에 주머니에 손을 꼽고 걸어야만 했기에 이것도 꽤 고역이라고 현호는 생각했다.

단풍이든 거리는 예쁘지만, 예쁜 동시에 또 잎들이 바닥에 무수히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라도 온다면 그것들이 모두 축축히 젖어 땅에 붙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에 거기까지 생각이 가자 그걸 밞고 다닌다는 기분이 뭔가 매우 묘했다.

하지만 현호에게 있어서 그것보다 더 묘한 일이 있었다.

새학기였던 봄이 지나가고, 매미가 지독히도 울던 매우 무덥던 여름도 지나가고 온 가을에 현호는 늘 짜증스럽게만 바라보던 도우를 어느날인가 부터 제대로 쳐다볼 수도 제대로 말을 나눌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맨 처음엔 이게 뭔가 싶어서 현호는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평생 살면서 사랑같은거 한 적도 없고 또 앞으로도 하게 되리란 생각을 갖고 있던 현호에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지만, 이건 어떻게 봐도 사랑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말도 안돼, 내가 남자를? 그것도 저딴 놈을?

현호는 충분히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이것은 현실이었고,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결국 현호는 그날부터 도우를 만나면 피하다니기 시작했고, 도우가 다가와 말이라도 걸면 일부로 못들은척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자 도우는 며칠동안은 집요하게 달라붙다가 곧 자신도 질렸는지 떠나갔고, 현호는 그것에 안도하는 한편 쓸쓸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났다.

도우와 현호는 말도 하지 않았고, 현호는 다시 혼자인 얘가 되어버렸다.

현호는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있는 도우를 힐끔 보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뜨러 갔다. 현호의 반은 3층. 물을 뜨러면 1층까지 내려가야 했기에 이것도 고역이다 싶어 한숨을 내쉬며 반에서 빠져나와 1층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제 점점 추워지는 탓인지 아이들이 밖으로 나오길 꺼려하는건지, 아이들은 꼬빼기도 보이지 않는 학교의 계단은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1층에 도착한 현호는 자신의 물통을 정수기에 갖다대려 허리를 숙였고, 그 순간 자신의 손목을 낚아채는 손길에 손에 들고 있던 물통을 떨어트리며 놀란 눈으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나 좀 봐."



꽤나 화난 표정의 도우는 현호를 끌고 평소 사람들이 잘 안오는 곳으로 데려갔다.

체육관 뒤에 있는 조그만 창고.

창고 안으로 현호를 억지로 우겨넣은 도우는 문을 잠구며 현호를 바라보았고, 현호는 두근거리는 마음에 또 다시 도우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너, 왜 나랑 말 안해?"

"...그거야..니가 나한테 말 안걸잖..아.."

"하, 먼저 말 무시하고 나 피해다녔던게 누군데. 그래, 이참에 물어보자. 날 왜 그렇게 피해다녔어?"



현호가 좋아하니까, 라고 대답하면 도우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현호의 머리속에선 아무리 상상을 해봐도 더러운 새끼라며 욕을 하고 뛰쳐나갈 도우가 상상됐기에 입을 꾹 다문채로 그저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힘든것은 지금 현재의 저 자신일텐데도 불구하고 몰라주는 도우가 원망스러웠다.

현호는 결국 눈가를 붉히더니 곧 눈물을 떨궈내며 울기 시작했고, 닭똥같은 눈물이 볼을 타고 뚝뚝 떨어지자 현호는 손등으로 자신의 눈물을 닦아내었다. 그제서야 도우는 놀라서 황급히 현호의 앞에 쭈그려 앉았고, 현호는 더더욱 필사적으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야, 야, 왜 울어, 응?"



누가 나랑 논다고 너한테 뭐라한거야? 응? 그런거야?

저 바보같은 새끼. 현호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제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다가 곧 도우의 우왁스러운 손길에 얼굴을 내보이고 말았다. 도우는 손을 뻗어 현호의 눈물을 닦아주었고, 현호는 그 손길에 곧 인상을 구기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왜 우는건데. 말 좀 해봐."

".....나쁜놈..."

"...뭐? 내가 왜 나쁜놈이야!! 먼저 피해다닌건 너잖...!"

"나쁜놈아!"



현호가 누군가에게 소리를 지른적이 있었던가. 현호는 도우에게 그리 소리를 지르고서 눈물을 계속해서 흘렸다. 도우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다가 결국 현호를 꼬옥 안아주었고, 현호는 도우의 옷깃을 잡고 한참이나 울다가 어느정도 진정이 되자 코를 킁킁 거리는 꼴이 여간 바보같아 보였다.



"그래서 왜 울었는데, 최현호."

"...말 못해."

"왜. 진짜 누가 너랑 나랑 논다고 뭐라 했어? 내가 잡아다가 혼내줄테니까 말해봐!"

"..그런거 아니야."

"그러면 뭔데. 그런게 아니라면 나 왜 피해다녔는데."

"..좋아..하니까..."

"...뭐?"

"...좋아한다고..내가 너를.."



..역시 좀 많이 더럽지? 미안해, 방금 그 말은 못들은걸로 해줘.

현호는 다시 눈물을 글썽이다가 손등으로 눈가를 벆벆 닦고서 도우를 지나쳐 문을 열고는 교실을 향해 달려가 재빨리 모습을 감췄고, 도우는 덕분에 한참동안 그 자리에 앉아서 벙쪄 있을 수 밖에 없었다.